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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Service Design

병원에 왜 디자인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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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국가고객만족도의 조사결과 고객만족도와 고객유지율 모두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조사된 산업은 병원서비스였다. 그동안 오랜 대기시간과 수납시스템의 불편함, 의료서비스 품질에 대한 불신 등으로 병원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점차 의료계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환자 중심 경영을 중시하는 풍조가 조성돼 고객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서비스를 개발했다. 아울러 치료기술을 차별화하는 등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고객 기대수준과 고객인지품질이 상승했다.'

출처 - 내일신문 2013. 1.9

 

 

 

 

위 글은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된 기사 내용이다. 그런데 왜 이리 현실과 거리가 크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병원은 의료서비스가 실현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하지만 병원이 환자중심경영을 통해 고객 만족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응급실에서 고열의 아이 엄마는 오랜 대기시간 동안 어떤 안내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 지 알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욱신거리는 무릎때문에 아침 일찍 병원을 찾은 할머니는 먼 뒤 어느 날인가 진료일을 예약하곤 그날을 기억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돌아간다.

병원의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라고 한다면, 과연 다른 서비스들은 어떤 품질로 제공되고 있다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원이 좀 더 고객을 이해하고 배려심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증거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병원은 심약한 고객을 대상으로 하기에 자연적으로 지위와 권위가 형성되게 된다. 특수한 공급자적인 지위로 인해 환자를 병원의 서비스를 이용해주는 고객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기회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근본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병원은 의료서비스의 공급자간의 치열한 경쟁, 각종 규제 등 의료산업이 처한 복합적 외부적 요인들과 고객의 감성과 심리적 요구, 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기대감 상승에 대한 대응 등 아양한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필요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급자의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에 집중하는 기존의 경영 관리적 관점만으로는 혁신의 기회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서비스는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도 고객의 심리와 감성에 대한 섬세한 터치가 중요한 서비스이다. 의료서비스의 고객인 환자, 환자 가족들은 감정적이나 신체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처해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고객을 섬세하게 배려한다는 점은 의료서비스에 있어 특히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병원이 고객 중심으로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서비스가 고객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히 들려서, 오히려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컨설팅 회사 베이앤펌터니(Bain & Company) 가 2005년 세계 362개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가 '우리 회사는 고객지향적인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80%의 기업들은 자기 회사가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업들의 믿음과는 달리, 고객들의 인식은 너무나 달랐다. '당신과 거래하는 기업이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느냐; 는 똑같은 질문에 대해 고객들 중 불과 8% 만이 '그렇다' 고 응답했던 것이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기업이 고객 중심의 마인들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조사되었던 기없의 95%는 경영의 최우선 초점을 고객만족에 두고 있다고 답했던 기업들이었다.

 

 

그림 1. Closing the delivery gap, 2005 Bain & Company,Inc.

 

 

이 결과를 통해 서비스의 제공자인 기업은 고객의 속마음에 숨어있는 욕구를 포착해내는 데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제공자는 제공자로서 자기 입장과 시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다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과 거래를 중단한 고객의 60~80%가 직전에 실시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한다'거나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로열티가 낮은 고객도 언제는 '만족한다'고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의 마음은 고객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마케팅 리서치의 기본적인 전제마저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객 중심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접근 방법과는 본원적으로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 대안적 접근법으로서 고객 관찰을 바탕으로 행동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감성과 심리를 다루는 디자인 방법인 '서비스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의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 심리적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하는 고객 중심의 서비스 개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디자인 접근 방법으로 서비스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선진국은 공공 서비스 영역인 의료, 교육, 치안, 교통 등의 분야에 나타나는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데에 서비스 디자인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과연 서비스 디자인은 병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는 어떤 능력을 가졌길래 병원을 도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그림 2 사진 출처 : 월간 디자인, 2012년 9월호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lk7ZmV3gYY

 

From 1979 to 1982, Patricia Moore, in a daring and ground-breaking research experiment, traveled throughout the USA and Canada, disguised as nine distinct Elder Women. With prosthetics that reduced her natural abilities at age 26, she was able to experience life as women in their eighties. The book DISGUISED: A True Story chronicles this extraordinary journey. DesignMoore@cox.net

 

 

두 가지 사례로 이것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사진 속 할머니는 '페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라는 분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니 주변의 시민들이 대신 문을 열어 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그녀는 당시 실제로는 26세였다. 페트리샤 무어는 26세였던 1979년 부터 자그마치 3년간이나 자발적으로 80세의 노파로 사는 경험을 했다.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노인의 삶을 체험해보고 그들에게 맞는 눈높이로 디자인을 하기 위해 그녀는 그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 건축이나 디자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노인은 소비자가 아니라는 잘못된 시각이 있었죠. 근본적으로 노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관찰이나 서루문조사 같은 방법도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충분히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노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페트리샤 무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니버설디자인의 거장 중 한명이다.

 

한 가지 더 예를 살펴보자. 일본의 '트라이포드 디자인'이라는 회사의 대표이자 동경대학 교수인 '나카가와 사토시' 역시 유니버설디자인의 전문가이다. 이 기업은 제품 개발시에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 명에 달하는 '리드 유저(lead user)라는 사용자 풀(pool)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에 각종 장애의 성격에 따라 분류되어 있는 정교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고 있다. 리드 유저라면 '앞선 사용자'라는 말인데 무엇이 앞서 있느냐면 '감각'이 앞서 있다는 뜻이다. 이들 리드 유저는 모두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이다. 장애인, 노약자 등 현재 장애를 가진 사용자들이 디자인 개발 시 많은 아이디어의 도화선이 되어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리서치 대상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트리아포드사는 실제로 무언가를 디자인 할 때 장애인들과 디자이너들이 한 팀이 되어 제품과서비스의 불편함을 고도로 디테일 한 부분까지 감지하여 개선한다. 예를 들어 볼펜은 디자인한다고 하면 어깨나 손목 근육 등이 불편한 사용자들을 팀에 합류시켜서 디자이너들과 함께 디자인하도록 한다. 디자이너들이 장애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도록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인은 '불편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예민도가 높아져 있어 제품의 위화감에 대한 민감성이 최고 수준에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고 편하다고 느끼는 제품이라면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편리할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주이고, 또 장애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페트리샤 무어와 트라이포드 디자인. 이 두가지 사례는 우리에게 예민한 사용자를 활요해야 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예민한 사용자들은 사회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레이더의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의 문제는 다양한 정황으로 존재한다.

1.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고 해결방법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단계

2. 문제가 드러나 보이지만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는 단계

3. 문제가 보이지 않지만 왠지 불편하게 느끼는 단계

4. 문제가 보이지 않고 불편함을 인식 못하는 단계

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인데, 병원 내부 직원이거나 고객이거나 각자 문제를 느끼는 수준은 제각각일 것이다. 좋은 디자이너, 예민한 디자이너는 일반인들이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3, 4단계의 위화감을 미리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착안점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림 3. 디자이너는 사인 이면에 숨겨진 미묘한 문제점과 위화감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 : Tripod Design Co., Ltd. 나카가와 사토시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훈련되고 성장하는 전 과정을 통해 디테일한 제품 / 서비스의 차이를 느끼고 감지하는 훈련을 거듭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감수성이 높으며 지각, 인지, 감성의 예민한 감지자로서 미묘한 위화감을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뛰어난 공감력으로 사용자 경험상의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강화된 전문가로서 키워진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고객이 느끼는 서비스의 경험가치를 잘 정렬함으로써 우리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설계자의 역할자로 적합한 것이다. 병원은 이들의 민감성을 활용하여 예고되는 문제를 찾고 개선해야 한다.

병원의 문제점과 고객의 잠재 욕구를 발견해내는 역할에 있어서, 높은 공감력을 가지며 인식의 가치가 잘 정렬되어 있는 디자이너야 말로 최적의 문제 해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왜냐하면 문제에 대한 높은 차원의 인간 중심적 해결책을 제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병원의 문제를 진단해 치료한다고 하면, 평생을 의료서비스라는 고도화된 전문의 성역에서 살아온 병원 관계자 관점에서는 주제넘은 주장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컨설팅이라는 것은 본래 특정 도메인의 전문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갖춰진 전문성과 그 영역이 가진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 능력과는 서로 관련성이 없다. 썩은 이를 최고로 잘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고객 관점에서 편안한 느낌을 제공하는 치과의 서비스를 가장 잘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하는 독특한 방법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도구를 가지고 병원이든, 은행이든, 사회 각처에서 생기고 있는 문제들을 푸는 것이 바로 컨설팅업이다.

 

실제 디자인잉 병원에 어떤 접근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하나의 예만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매년 5천명이 병원 내 재감염의 문제로 사망하고 있어 많은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영국 디자인카운슬과 보건부가 함께 실행한 '디자인 세균 퇴치'(Design Bugs Out) 사업을 통해 11개의 제품 프로토타입이 제안되었고 이중 6개의 제품이 대량 생산까지 이어졌다. 그 중에 병실 내에서 쓰이던 커틍네 작은 손잡이를 달아서 사람들이 천을 잡지 않고 그 손잡이만 잡고 커튼을 조작하게 유도함으로써 손쉽게 커튼을 만지는 손에 의해 세균이 감염되는 것을 방지한 사례가 있다. 정말 너무나 사소하기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변화이다. 하지만 손을 통해 옮겨지는 세균 감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점에서 분명한 혁신이다. 우리가 쉽게 느끼지 못하는 곳곳에 숨겨진, 작지만 분명한 혁신은 디자인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이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거창한 일일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림 4.탈/부착식 커튼 클립으로 커튼클립을 따로 장착하도록 디자인함으로써 커튼을 직접 만질 필요가 없어 2차 감염의 위험이 줄어들도록 한 디자인.

표면이 매끄럽도록 디자인하여 쉽게 청소할 수 있게 하고 2차 감염의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 : 의료서비스분야 디자인 혁신 사례집 (http://cafe.naver/com/usable/1895) 중에서 'Design Bugs Out' 사례 재인용

 

 

디자인은 병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차 대전 때 잠수함에는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술이 없어서 산소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토끼를 함 내에 두었다가 토끼가 죽으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식으로 감지기 대신 토끼를 활용하였다고 한다. 소설 '25시'에서도 작가 콘스탄틴비르질 게오르규는 사회의 문제를 예고하는 데에 작가의 존재가 바로 잠수함 속 토끼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디자인은 병원의 문제를 발견하는 토끼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해결책을 제안하고 그것을 실제로 가시화 시켜 낼 수 있다.

의료서비스디자인은 의료산업을 수요자 중심으로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개념이다. 단지 인테리어와 기기, 가구의 스타일링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병원에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고객 중심의 혁신이 필요한 과제를 찾고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 심지어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까지를 깨닫고 의도적으로 적용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야 한다. 디자이너는 민감한 레이더로서 제품, 환경, 나아가 병원의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창의적 해결책으로 개선해내고, 고객의 심리를 움직이는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함으로써 고객 감동의 병원으로 혁신하도록 돕는 휼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지털융합팀 윤성원팀장

201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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